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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모필리아 라이프] 장애인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앞으로도 계속 노력을…
19-08-20 10:40 5,216회 0건

장애인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앞으로도 계속 노력을…[인터뷰] 안산시 장애인종합복지관 박상호 관장과의 인터뷰

황정식 기자  |  nbkiller@hanafos.com
 
혈우병 환우 중에 혈우병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번에 인터뷰를 하게 된 박상호 관장도 이러한 혈우병과 간접적으로 관련된 일을 하고 있어 만나보았다. 안산시 장애인종합복지관을 운영하고 있는 박상호 관장을 만나 혈우병과 장애인, 그리고 우리나라의 장애인 복지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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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산시 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박상호 관장

유기자 : 본인 소개 좀 부탁드려요.

박상호 : 제가 63년생이니까 한국 나이로 하면 올해 57세가 되네요. 혈우병 타입은 A형에 중증입니다. 예방은 규칙적으로 3일에 한 번씩, 아니면 4일에 한 번씩 2000 유니트씩 맞고 있지요. 지체장애 3급도 등록돼 있어요. 그리고 아내는 제가 서른한 살 때 교회에서 전도사 생활 하면서 만나서 결혼하게 됐어요. 그 당시 아내도 교회에서 활동하는 교사였어요.

유기자 : 가족 소개 좀 해주세요.

박상호 : 큰 아이가 지금 스물다섯 살이에요. 지금은 군대 갔다 와서 대학교 4학년 졸업반이지요. 그리고 제가 신학교 다닐 때 선배들 중에 입양을 해서 키우는 분들이 몇몇 계셨어요. 입양과 관계된 서클 활동을 하면서 저도 배웠는데. 나중에 제가 결혼하면 아들이든 딸이든지 그냥 하나만 낳고 여건이 되면 입양해서 키우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우리가 알다시피 남자 아이는 괜찮지만 여자 아이가 태어나면 보인자가 될 확률이 높잖아요. 그 아이가 장성해서 결혼하면 혈우병 아들을 낳을 가능성을 알기 때문에, 아내하고 만났을 때도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제 병도 다 오픈했고, 우리 아이는 한 명만 낳고 입양 하면 좋겠다고 했는데 아내도 좋다고 했고요. 그래서 2006년도인가 지금의 작은 아이를 입양했는데, 저희한테 한 살 때 왔는데 벌써 중학교 2학년이 됐네요. 애들이 어릴 때 코헴회 행사도 몇 번 갔었어요.

유기자 : 혈우병은 어떻게 알게 되셨고 첫 진단은 어떻게 받으셨어요?

박상호 : 혈우병이야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었던 거고, 정확하게 진단받은 것은 한 열일곱 살 때인가? 세브란스 병원에서 진단받은 게 처음인 것 같아요. 그때 진단받은 이후로 지금까지 혈우병과 관련해서 병원에 다니고 있고요. 활동을 공식적으로 하게 된 것은 약이 나오면서부터였어요. 그게 한 90년도인가? 그때부터 활동을 했고 그전에는 집에 있으면서 공부도 하고 사회인으로서 내가 뭘 해야겠다는 생각에 중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학원 다니면서 공부했어요. 그러다 뜻한 바가 있어서 신학대학을 들어갔죠. 약은 충분치 않아 필요할 때만 맞았고, 대학교 다닐 때 공부하면서 혈우병 때문에 한 1~2년 쉰 적도 있었죠. 신학을 공부하면서 단순히 그냥 일반적인 성직자로서 또는 목사로서보다도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살아야 되겠다는 뜻이 있어서 대학원을 졸업하면서 사회복지대학원 공부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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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요일, 바쁜 시간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내어 헤모라이프와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유기자 : 지금 하고 계시는 복지관 일은 어떻게 하게 되셨어요?

박상호 : 대학원을 졸업하고 사회복지를 공부하면서 교회 사역을 접고 밀알이라는 선교단체에서 장애인이 일하는 단체로 오기 시작했죠. 그게 인연이 되었고, 지금 이 복지관이 밀알재단 소속의 장애인 복지관이거든요. 지금은 저희 복지관 직원이 60명인데, 개관할 때는 지금보다 작았어요. 그때 관장으로 임명을 받아 일하게 되면서 지금까지 딱 20년째에요.

유기자 : 수술 요법을 하신 적이 있으신지요?

박상호 : 인공관절 두 군데 수술했어요. 무릎 한 군데하고, 고관절 한 군데하고. 무릎은 한지 6년? 그리고 고관절은 한 7년 되네요.

유기자 : 지금 몸 상태는 어떠세요?

박상호 : 수술하고 나서 효과는 좋아요. 상태가 한 10년, 2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수술하기 전에 만났다가 수술하고 나서 이렇게 정착이 된 다음에 만나면 달라졌대요. 힘도 자세도 좋아지고 걷는 데 큰 표시가 안 난다는 거예요. 물론 약도 충분히 맞아서 관리도 하지만 이게(인공관절) 좋다고 아는 사람한테는 설명을 하죠. 인공관절도 더 일찍 할 수 있었지만 최대한 늦춰서, 더 이상 재수술 같은 거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늦추다 보니까. 그래도 잘 정착하고 지내고 있습니다.

유기자 : 평소 몸 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박상호 : 특별히 건강관리 하는 것이라… 저 수영 다녀요. 수술하기 전에 근육을 키워 놓아야 회복이 빠르고 효과가 좋다고 그러잖아요. 동네 앞에 스포츠센터가 있는데 거기 가서 수영을 하기 시작했죠. 수영을 배우기도 했지만 물속에서는 저항이 크니까 30분 정도 걸으면서 운동하는 게 좋더라고요. 벌써 10년 가까이 다닌 것 같아요. 7일 중에 5일은 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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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 복지가 필요한 장애인은 정신적 장애라고 생각해요."

유기자 : 여기 장애인복지관의 운영 형태는 어떻게 되나요?

박상호 : 장애인 복지관은 거주시설이 아니에요. 생활시설, 수용시설이 아니고 지역사회에 사시는 장애인들을 위해서 의료, 교육, 치료, 여가, 문화, 직업, 인권 증진 등 관련된 여러 활동, 파트별로 활동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거죠. 저도 맨 처음에는 그랬지만 장애인 하면 보통 휠체어 타는 사람, 앞이 안 보이는 사람, 이렇게 신체적 장애를 생각해요. 그런데 내가 이 분야에 들어와서 전문적으로 일하다 보니까 진짜 장애인들은 신체적 장애인들보다 정신적 장애인들이 진짜 장애인이구나, 이런 걸 느꼈고 또 사실이 그래요. 신체적 장애인들의 장애는 장애가 아니라는 말이 아니라 장애이기는 하지만 그런 장애는 의료나 사회적인 제도, 쉽게 말하면 소득이나 그런 것들로 일정 수준 어려움을 보장해주거나 커버할 수가 있어요. 그런데 정신적 장애, 흔히 이야기하는 지적 장애나 발달 장애, 정신적 관련 장애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아니면 어릴 때부터 성인이나 노후가 될 때까지 전문적인 케어가 필요해요. 지금 장애인 복지 분야에서 일하는 기관이나 관련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거의 80~90%가 정신적 장애인들과 관련된 그런 데서 일하는 거죠. 우리 복지관도 마찬가지로 특정 유형만 하지 않고 지역사회 장애인들을 위해서 뭔가 잘 살아가도록 지원활동을 하고 그들의 권익을 위해서 지역사회 활동을 하고 있어요.

우리 혈우병도 어떻게 보면 후유장애가 있어서 그 자체로도 장애거든요. 우리가 공식적으로 인정을 안 해줘서 그렇지 생활에 불편을 주고 살아가는 어려움을 갖고 있잖아요. 단지 혈우병은 의료적인 약 서비스를 100%만 해줘도 사는 데 지장은 없잖아요. 그런데 이런 정신적 장애에는 더 전문적인 관리가 필요해요. 제가 몇 년 전에 핀란드 헬싱키에 갔던 적이 있어요. 거기 시청 담당자가 자기네 시청의 현황을 이야기 해주는데, 특이한 게 장애인 인원이 몇 천 명밖에 안 된다기에 ‘여긴 왜 이렇게 장애인이 적냐’ 고 질문을 했죠. 그랬더니 그분이 여기서는 정신적 장애인들만 카운트 된다는 거예요. 다른 장애 유형에 대해선, 소득은 소득 지원 관련 부서에서 직업은 고용노동부에서 주택은 주택부에서 알아서 플러스 알파로 케어해 준다는 거죠. 즉 정신적 장애, 자기주장이 어려운 사람들을 어릴 때부터 돌아갈 때까지 필요에 맞게끔 관리해주고 케어해주는 게 진짜 장애인 복지라는 거죠. 저도 우리가 몸이 불편한 게 장애가 아니고 정말 더 책임져 줘야 하는 장애인들이 진짜 장애라고 생각해요.

유기자 : 우리나라는 지금 말씀하신 그런 것들이 보편화되어 있지 않아 힘든 부분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박상호 : 우리나라는 첫째, 국가 경제수준에 비해서 사회복지가 아직 충분하게 완비되어 있지 않아 복지국가 모형을 아직 못 갖추고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사실 장애인이 아니라도 일반적인 국민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자기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 너무 많아요. 두 번째, 장애가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죠. 그 장애 때문에 플러스 알파로 더 어려움이 있는데 그걸 커버해주는 게 약해요. 그러니까 장애를 통해서 뭔가 자꾸 어려움이 있으니까 그것을 요구하고, 요청하고 그러는 거거든요. 외국의 경우 복지가 잘 돼 있는 나라들은 장애가 있고 없고가 문제가 아니고 기본적으로 삶을 보장해주고, 일정 수준의 삶의 질이 보장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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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해온 일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장애인의 복지를 위해 더 힘을 쓰고 싶다고 박상호 관장은 말했다.

사실 복지를 많이 해서 망한 나라는 별로 없어요. 오히려 부정부패가 많거나 모든 걸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하지 않아서 문제가 생기면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겠죠. 오히려 부정부패 없고 엉뚱한 곳으로 세금 낭비하지 않는다면 선진국의 2배 이상을 복지에 투자해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황기자 : 사회복지사업을 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장애인이 있으시다면?

박상호 : 장애인으로서 프로그램에 참여해 교육을 받고 취업도 해요. 원래 장애인 복지의 재활의 꽃은 직업재활이에요. 직업을 갖고 혼자 잘 살게 하는 게 어떻게 보면 제일 궁극적인 목적이라 마음가짐을 다잡고 출발을 하는데 하다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그럼에도 여기 근처 이마트에 취업해서 창고 관리 일을 맡아서 하시는 분이 있어요. 가끔 여름에 우리 직원들 나눠 먹으라고 수박을 사오곤 해요. 되게 성실한 분이세요. 마트에서 근무한 지도 10년 넘은 거 같아요. 우리 복지관에서 활동도 하고 그러셨어요. 이 분야에서 일하면서 지금까지 나름대로 사명감이랄까. 우리보다 더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열심히 일하는 그런 모습을 보면 우리들도 다시 생각하게 되죠.

황기자 : 반대로 복지관 운영하시면서 안타까웠던 일이 있었다면요?

박상호 : 안타까운 일이라… 우리 복지관이 시작할 때부터 장애인 단체와 갈등이 좀 있었어요. 그분들이 말씀하시는 당사자주의라는 것이, 왜 장애인 단체나 장애인들이 이런 일을 해야지 장애인 단체가 아닌 일반 법인단체나 밀알복지재단이 하냐. 특별히 장애인 시설은 장애인 단체가 해야지, 이렇게 주장하면서 갈등이 없지 않아 있었어요. 여기 안산 지역에는 밀알복지재단이나 교회 재단이 하는 장애인 시설이나 사회복지시설들이 좀 있거든요. 그런데 저도 장애인이지만 장애라는 것을 통해 너무 센 주장을 하는 경향은 좀 아닌 것 같아요. 이해를 하면서도 그런 게 좀 있더라고요. 많이 개선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런 걸 보면서 그런 생각을 버려야 되는데. 이 일을 하면서 그런 생각이 좀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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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모라이프 기자에게 책을 권해주시는 박상호 관장, 책 읽는 것이 취미라고

황기자 : 근무 외의 시간은 뭘 하시면서 보내시는지. 가령 취미생활로 활동하는 게 있는지요?

박상호 : 취미. 취미는 뭐 제가 특별히 어떤 한 가지, 두 가지에 마니아로서 있는 건 아니고 난 그냥 책 보는 거. 만약에 한 달간 휴가를 준다면 조용한 곳에 가서 보고 싶은 책 읽으면서 지내고 싶어요.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은데 그걸 못 읽어요(웃음). 저는 사회적으로 관련된 책들을 좋아해요. 책모임 같은 곳에 가는 것도 좋아해요. 직업병인지는 모르겠지만 해외에 나갔을 때도 자연이 아름답다는 그런 부수적인 거 말고 그 나라는 어떻게 사나, 그 나라는 이런 정책들을 어떻게 하고 사나 등 이런 게 궁금해요.

황기자 : 앞으로의 개인적인 계획이 있다면요?

박상호 : 이 분야에서 20년쯤 일을 하고 있는데. 나이가 벌써 57세가 되는지라 새로운 일은 못할 것 같네요. 어떻게 보면 내가 관장으로써 이 일을 수행하는 게 나에겐 참 감사한 일이죠.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게 보람된 거잖아요. 새로운 다른 분야보다 지금 내가 경험하고 알고 있는 이곳이 어떻게 하면 발전적으로 잘 정착되도록 할까, 복지관으로서 그 시대에 맞는 역할을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까, 우리 직원들이 어떻게 보람된 일을 하고 성장하면서 일하게 할까, 그리고 나아가서 우리 사회가 이 분야에 관계돼서 더 바람직하고 건전하게 정부나 사회나 이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나 장애인들이 합의가 돼서 보다 발전적으로 나갈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도 나름대로 했지만 솔직히 내가 가진 혈우병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잖아요. 지금처럼 앞으로도 관리 잘하면서 제가 갖고 있는 기독교관에 입각해서 잘 실천해 나가면 될 것 같네요. 그리고 둘째가 중학교 2학년인데. 대학교 들어 갈 때까지 한 5년 남았죠. 제가 은퇴하기 전까지 최소한 대학은 졸업해야 하는데 그렇게 못할 것 같기도 해요. 그래도 내가 여력이 되면 그때까지는 지원해 주어야겠죠.

유기자, 황기자 : 인터뷰 감사합니다.

박상호 : 감사합니다.

 

박상호 관장을 만나 인터뷰를 하면서 우리 혈우환우들도 많이 겪고 있는 장애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본인도 장애인이지만 더 힘든 장애인들을 위해 오늘도 발벗고 힘이 되어주고 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있어 우리의 미래가 밝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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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황정식 기자, 박상호 관장, 유성연 기자

[헤모라이프 유성연, 황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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